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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날 수록 병은 깊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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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1-05-03 12:19 조회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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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아날수록 병은 깊어지고
결석, 휴학, 복학, 두 번째 휴학.... 이젠 더 휴학 할 수도 없게 됐다. 달아날 때까지 달아나 봤지만 잠시 쉬는 동안 증상이 좋아질 뿐 나가면 또 재발한다. 이젠 막다른 골목까지 왔다. 집에서 쉬면 일단은 편하다. 사람 만날 일 없으니 편할 수밖에.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나? 낫는다는 보장도 없다. 친구들은 저만큼 앞서 가는데 난 이게 뭔가. 뒷방 구석에 처박혀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욕심도 많고 이상도 높은 환자 입장에서 이대로 처진다는 게 자존심이 상해서도 견딜 수 없다. 시일이 지날수록 초조하고 불안하다. 아, 난 이대로 영영 주저앉고 마는 건가. 이대로 내 인생은 끝장이 나는 건가. 실망, 낙담, 열등감, 패배감....형언할 수 없는 착잡한 감정이 우울증을 만들고 끝내 자살로까지 이어진다.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누구 책임도 아니다. 자기 스스로 사람을 피해 달아난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해답은 간단하다. 다시 나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제 확실한 결론은, 달아나는 방법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점이다. 증상 해결은커녕 초조, 불안, 우울증까지, 설상가상 상황만 더 악화될 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와야 한다. 학생은 학교, 직장인은 직장이다. 용기? 자신? 거창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용기도 필요 없고 자신도 필요 없다.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가면 된다. 간단하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도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 휴학이니 휴직이니 하는 생각일랑 아예 말고, 오늘 하루, 그냥 계속 나가는 것이다.
2. 자주 만나야 단련된다.
사람을 만나면 좀 긴장이 되고 때론 어색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게 나한테만 있는 특별한 문제는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다. 꽃은 아름답고 범은 무섭다. 누구나 그렇다. 엄마와는 편하지만 다른 사람과는 긴장이 된다. 누구나 그렇다. 이걸 ‘안 그래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무리요, 문제다. 이건 마치 범을 안 무서워하고 범 앞에 편안해야겠다는 생각과도 같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려는 일이다. 사람을 만나면 편해야겠다는 생각, 그게 문제다. 가을은 시원해 좋지만 겨울은 추워서 싫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싫어도 우린 겨울을 날 수밖에 없다. 좀 웅크리고 떨면서 그렇게 날 수밖에 없다. 그러노라면 언젠가 봄이 온다. 범은 무섭다. 겨울은 춥다. 사람은 힘들다. 우린 이걸 부인 할 수없다. 싫다고 바꿀 수도 없다. 이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나만의 특별한 문제도 아니다. 어떻게 좀 편하게 할 순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 환자들은 그 생각에 잡히게 된다. 안 될 일을 되게 하려니까 모든 의식이 거기에만 집중되고 완전히 그 생각의 포로가 된다. 여기에 잡히면 안 된다. 어색해도 만날 사람은 만나야 된다. 편한 척 할 것도 없다. 좀 불편해도 그런대로 만나는 것이다. 억지로 편하게 할 순 없을까 하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그 생각에 잡히게 되고 그럴수록 계속 의식이 되어 예기 불안을 더욱 강화한다.
3. 할까 말까
이게 사람 잡는다. 내일은 회의다. 발표를 해야 되는데, 할까 말까 밤새 고민을 해도 결론이 안 난다. 하긴 해야겠고 하자니 떨리고... 마음이 두 편으로 걸려 싸움을 한다. 이것만큼 견디기 힘든 갈등도 없다. 하려고 마음먹는 순간, 회의석상에서 벌벌 떨며 말 한 마디 변변히 못하는 내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오른다. 안 되겠다. 그만두자. 하지만 다음 순간 여러 가지 후유증이 걱정이다. 사장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래서야 인정을 받을 수도 없고 승진, 영전도 기대할 수가 없다. 그걸 생각하니 또 앞이 캄캄하고... 하자! 안 돼! 이렇게 밤새 자기와 싸우느라 잠 한 숨 못자고 이튿날 밥맛도 없다. 한데도 아직 결론은 안 났다. 회의는 아직 시작도 안 되었는데 이미 녹초가 된다. 큰 회의를 앞두고 비슷한 경험을 더러 해봤을 것이다. 우리 환자 경우는 하찮은 작은 모임에도 녹초가 된다. 발표는커녕 갈까 말까부터가 고민이다. 이럴 때 해답은 딱 한 가지, ‘한다’는 쪽이다. 언제든지 ‘한다’는 원칙으로 살아야 한다. 물론 그런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할까, 말까’ 하는 고민은 해결된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반은 해결된다. 막상 한다고 결심해 버리면 반도 더 해결된다. 우선 마음이 한쪽으로 통일되니 한결 편해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자료 준비에서 정리까지 공부도 하게 된다. 이것부터가 큰 소득이다. 설령 못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공부하고 준비한 만큼 실력도 불었으니 그만큼 소득이다. 할까 말까 밤새 고민하는 것보다는 하늘과 땅 차이다.
4. 링에도 못 오르고 KO라니
내일은 또 회의다. 저녁부터 밥맛이 없다. 참석? 또 지난번처럼 벌벌 떨기만 하다 끝내 말 한마디 못하고.... 남들이 뭐랬을까? 또 사장은?... 생각할수록 앞이 캄캄하다. 생각만 해도 침이 마르고 회의 때의 그 초라하고 창피했던 자신의 모습이, 그리고 끝난 후 그 비참했던 심경이 계속 떠오른다. 물론 누가 뭐라고 한 건 아니다.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안 되는 방향으로만 생각이 발전한다. 말문이 그리고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 끝내 쓰러지면 어떡하나? 혼자 앉아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 차라리 그럴 바엔 아니함만 못하다. 그래 그만 두는 거다. 적당히 핑계를 대고 회의 끝난 후 출근 할 수밖에 없다. 이건 우리 환자가 흔히 쓰는 전형적인 시나리오다. 링에 올라 시합이라도 해보고 지는 거야 어쩌겠소. 이건 숫제 오르지도 못하고 라커룸에서 준비하다 KO당하는 꼴이다. 물론 상대 선수가 와서 한 방 친 것도 아니다. 자기 펀치에 자기가 맞고 쓰러진 것이다. 지레 겁을 먹고 제풀에 쓰러졌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모든 건 제탓이다. 환자도 그걸 안다. 그래서 더 괴로운 것이다. 자책과 자학, ‘아이구 이런 어벙이야 죽어라 죽어. 이러고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냐.’ 심한 열등감, 패배감으로 고민하게 된다.
5. 공포의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라
내 방에서 혼자 뒹굴 땐 불안도 긴장도 없는 ‘제로’ 상태다. 그러다 친구가 오면 가벼운 흥분이 일면서 긴장 수치가 10정도로 나타난다.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20쯤 되겠지.... 이렇게 상대가 누가냐에 따라 불안 지수가 올라간다. 과장이 주재하는 아침 회의라면 30 정도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이 정도 불안은 기본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기본적인 부담이요, 긴장이다. 자료를 챙기고 준비를 잘 해서 효과적인 회의를 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적인 불안지수다. 한데 우리 환자는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기본적인 불안지수 30을 서서히 키워 간다. 떨릴 텐데? 말이 잘 안 되면?... 이렇게 그 공포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50, 60, 70... 자꾸 올라간다. 숨이 답답하고 떨린다.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쿵쿵거리고... 끝내 말 한 마디 못 하거나 중간에 회의장을 나와야 한다. 이때의 공포지수는 100. 여기까지 오면 이건 공포도 지나 공황 발작이다. 왜 이 지경까지? 불안지수 30, 이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불안마저 겁을 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다 있는 걸 마치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병적인 걸로 착각한다. 남들은 다 의젓하고 편해 보이는데 왜 나만 이럴까? 이래서는 안 되는데. 차분해야 될 텐데... 이 생각이 긴장을 더욱 부채질하여 본격적인 공포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된다. 불안지수 30은 기본이요, 필수다. 남들도 다 그렇다. 이걸 못 받아들이고 ‘이크! 또’ 하는 순간, 불안도 지나 공포 단계로 올라간다.
6. 닥치면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못 하겠다. 안 된다 하고 꽁무니를 빼던 환자도 막상 닥치니까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썩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예상했던 것만큼 절망적이진 않았다는 것이다. 환자 자신도 신기한 모양이다. 숨이라도 막혀 죽기라도 할 것처럼 ‘엄살’을 떨더니 막상 닥치니까 제법 의젓하게 해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이게 내가 진료한 모든 환자의 한결같은 고충담이요, 성공담이다. 닥치니까 하게 되더라는 사실, 우린 이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중소기업 김 상무의 대답은 이렇다. “사장이 주재하는 회의라 빠질 수도 없고, 안건이 내 담당이라 다른 사람을 시킬 수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난 이제 죽었다. 이판사판이다. 망할 테면 망해라. 거의 자포자기적인 심정이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상한 일이죠. 아주 그럴듯하게 잘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장도 아주 흡족해 하고 내 제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겁니다.” 그는 특전사 낙하산 투하 훈련을 상기했다고 한다. 처음 낙하 땐 너무도 겁이 나 훈련 조교에게 등을 밀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난 죽었다.’ 그런 기분으로 발표를 했다고 한다. 대개 사람들은 ‘한다’고 결심을 하는 순간 과거의 힘들었던 회의만을 생각한다. 떨려 창피했던 기억만 떠올린다. 그럴수록 더 겁이 나도 위축된다. 그러나 또 생각해 보라. 어렵긴 해도 그럭저럭 해 넘긴 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 걱정 말자. ‘닥치면 하게 되더라.’ 이것을 확인해 주는 것만으로도 한결 편할 것이다.
7. 난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환자들이 가급적 피하고 안 하려고 하는 데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아무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다. 남들에게 잘한다는 인상을 줘야 할 텐데, 그게 안 될 것 같다. 잘하긴 커녕 형편없다고 핀잔을 받을 것 같다. 그럴 바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게 환자들 딴엔 약은 계산이다. 어째 저래? 형편없다고 나를 평가할 것이다. 모든 환자는 이런 확신을 갖고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안 해야지. 괜히 사서 욕먹을 짓을 해야 할 까닭이 없다. 한데 문제는 그게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건 내가 나를 그렇게 보기 때문에 남들도 나를 그렇게 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데 불과하다. 그건 단지 내 생각이지 상대의 평가나 생각은 아니다. 상대가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어떻게 알아? 물어봤나? 물론 물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안 물어 봐도 안다는 게 환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사실 이건 어거지다.) 사람들의 못마땅해하는 얼굴이 역력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가 발언하는 동안 보기에 민망스러워 고개를 숙이고 있더라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형편없이 못했으면 그랬겠어. 환자는 자신의 관찰이 틀림없다고 우겨댄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그 중엔 있겠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형편없다고 생각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집단 치료 장면에서 자기는 벌벌 떨었다지만 사람들은 전혀 그런 기색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의사의 눈에도 그는 제법 의젓하게 잘 해낸 것이다. 문제는 환자 자신의 평가절하다. 남의 생각이 아니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내가 보는 거와 남이 보는 나 사이의 큰 차이, 이걸 알아야 한다.
8. 용기는 필요 없다.
“다음 학기부터 복학을 해야 할 텐데, 자신이 없습니다. 용기가 생겨야 갈 텐데 아직은 어림없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저렇게 방구석에 죽치고 앉아 있다. 멀쩡한 사람이 ‘그러고 죽치고 있으면 언제 그 놈의 용기가 생긴단 소린가? 얼마나 더 기다리면 된다는 소리냐?’ 가족들이 다그친다. 하긴 그렇다. 이렇게 기다린다고 용기가 생길 것도 아니다. 환자도 알고 있다. 기다려야 자신이 생길 것도 아닌 줄 뻔히 알면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죽을 맛이다. 그래도 선뜻 나설 용기는 없고!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거기에 무슨 그리 큰 용기가 필요한가부터 생각해 보자. 범을 잡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무슨 그리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거냐. 그냥 가면 된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그리고 학교엘 가면 된다. 죽을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용기를 내라? 자신을 가져라? 그런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용기를 안내도 되고 자신이 없어도 된다. 그냥 가면 된다. 더 기다린다고 없는 용기가 생겨날 것도 아니거니와 도대체 컴퓨터 가는 데 용기란 게 처음부터 왜 필요한가? 웅크리고 기다리는 사이 점점 컴퓨터 가기가 두렵다. 사슴 새끼가 호랑이처럼 된다. 용기가 생기는 것 기다리느라 사슴을 호랑이로 키워 놓은 것이다. 밖에서 큰 입을 벌려 으르렁거리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좀 냉정히 떠져 보자. 그건 내가 만든 종이 호랑이일 따름이다. 허상일 뿐 실제는 아니다. 용기도 자신도 필요 없다. 그냥 일어나 가면 된다.
9. 최상의 수비는 선제공격
지명을 당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발언과 스스로 자청해서 하는 발언은 엄청난 차이다. 싫은 걸 억지로 해야 할 때, 안 하고 싶은데 기어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 어려워 피해 다니던 상사를 복도에서 만나게 될 때...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나듯 당황스럽다. 환자 입장에선 꼼짝없이 ‘당하는’ 상황이다. 피할 수도 없고 옴짝달싹 못하게 된 상황에 빠져 버린다. 쫓겨 달아나던 개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한 번 짖어 보지도 못하고 주저앉는다. 쫓겨 달아난다는 건 이미 공격 중추가 완전히 기죽어 버리고 싸워 볼 엄두조차 못 내 보는 상황이 됨을 말한다. 중추신경은 이미 패배 무드에 젖어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을 할 수밖에 없다. 피해 달아난다는 건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건 모든 동물에서 예외가 아니다. 사람 만나기가 두려워 피해 달아나는 입장이 되면 어떤 일에도 자신이 없다. 행여 잡힐까 조마조마하다. 그러다 막상 그 사람을 만나게 되거나 지명을 당해 보라. 순간 앞이 캄캄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하게 된다. 이런 심리 상황에선 백전백패다. 전장에서 쫓기는 패잔병이다. 처방은 간단하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바뀌어야 한다. 피해 달아나는 소동적인 자세가 아니고 올 테면 와라, 일전을 불사하는 공격적이고 적극적 자세여야 한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면 기다리고 앉았다 당하는 꼴이 되지 말고 스스로 자청해서 해야 한다. 지명당하기 전에 먼저 발언 신청을 하는 것이다. 만나면 어쩌나 복도를 훔쳐보거나 망설이지 말고 ‘만나야 할 텐데’하고 기도를 드려라. 이런 자세의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10.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는 무대 연출자를 당황스럽게 만든 적이 많다. 무대 준비가 다 끝나고 등장을 해야 할 차례인데도 그는 아직 옷을 갖추어 입지 않고 있다. 청중들은 그가 오르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데 무대 뒤의 그는 아직 준비가 안 돼 있으니 연출자는 속이 탄다. 또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무대 준비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등장하는 통에 모두들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한다. 세기의 거장 카잘스. 그는 연주 평생을 무대 공포증에 시달려 왔다고 고백했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부터 힘들었다. 시간이 되어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누가 대신해 줄 사람도 없다. 기다리는 동안의 초조로움만 더해 갈 뿐이다. 그게 힘들어 그는 서둘러 무대에 올라갈 때도 있었던 것이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원리를 터득한 것이다. 막상 무대에 올라 연주가 시작되면 신기가 발휘되지만 그때까지가 항상 힘든 것이다. 초등학교 때 차례로 줄을 서 매를 맞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앞의 녀석들이 아파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아프다. 아, 그 기다리는 동안의 초조로움이라니! 차라리 빨리 맞아 버리는 게 한결 속편하다. 막상 맞고 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이 더 아프다. 어느 사형수가 처형 일자를 앞당겨 달라고 청원한 까닭이 이해될 것이다. 차례가 오기를 조마조마 기다리느니 먼저 나가 맞는 게 낫겠다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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