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과 깨어남, 감미한 비애와 도취 이것이 나의 봄이었다.
지금 맞는 삼십대의 봄은
그렇게까지 강한 긴장감으로 나를 가득 채워주지 않는다.
그러나 관능을 흔드는 먼지 섞인 봄바람과
해이하게 풀린 연한 하늘을 보면
먼 메아리처럼 취기의 여음이 가슴 속을 뒤흔든다.
그래서 막연히 거리를 걷고 있는 자기를 문득 발견할 때가 있다.
전혜린의《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중에서
사는 동안 아주 낯익은 것이 갑자기 다른 것으로 느껴진다든가,
너무나 익숙한 곳이 처음 와보는 곳처럼 여겨지는 경우는 허다하지만
실제로 너무나 잘 아는 길에서 헤메이다보니
나 자신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이런 나를 믿고 어찌 살 것인가,
과장된 회의마저 든다.
문득 진짜 내가 그 길을 잘 알고 있었는가?
내가 잘 안다고 여기고 있는 그 사람을
진심으로 내가 잘 알고 있는가? 하는 반문이 생긴다.
그런가?
정말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 있는가?
그 길을? 그 사람을? 그 일을?
.
사랑이 깨어지는 일은 그치지 않고 발생한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더 사랑한 사람이 더 기억하고
그 사랑에 더 몰두한 사람이 깨어짐으로부터 멀어지는데
시간이 더 걸릴 뿐
신경숙의《자거라 네 슬픔》중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기다린다는 말인 줄 알았다.
가장 절망적일 때 떠오른 얼굴
그 기다림으로 하여 살아갈 용기를 얻었었다.
기다릴 수 없으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줄 알았다.
아무리 멀리 떠나있어도 마음은 늘 그대 곁에 있는데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살았다.
그대도 세월을 살아가는 한 방황자인 걸
내 슬픔 속에서 알았다.
스스로 와 부딪치는 삶의 무게에
그렇게 고통스러워한 줄도 모른 채
나는 그대를 무지개로 그려 두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하고 떠나갈 수 있음을 이제야 알았다.
나로 인한 그대 고통들이 아프다.
더 이상 깨어질 아무것도 없을 때,
나는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돌아설 수 있었다.
서정윤 / 사랑한다는 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