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황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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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80년 2월14일 아침 식사후 사랑에 가신 할아버지 께서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 가보니 의식은 없었고 가쁜 호흡만 있었다.
진누 깨비가 내리는 추운 겨울 화장실 가시다 쓰러 지신거 같았다. 집으로 모시고 와서
얼은 몸을 녹이고 의사를 불러 왔지만 뇌출혈 이라고 준비 하라며 갔다.
그후 나는 옆에서 몸이 녹으면서 가래가 많이 나왔고 그것을 닦아주며 12시가 조금지난
시간 한번에 깊은 호흡과 함께 돌아 가셨고 새벽에 내가 감당하기 힘든 심부름이 많았고
그렇게 장례와 사모제를 마친 그날밤 새벽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내가 일어나 있는 것이었다. 무섭고 의아 했지만 곳다시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 났을때는 엄청난 두통과 풍선처럼 부은거 같고 심장이 심하게 뛰고 있었고 이제는 죽는구나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죽음외엔 아무생각 없었다. 집안은 날리가 났고 의사를 불러왔다. 심장이 약하다고 했다.. 바로 병원을 찿아 입원을 했고 여기서는 급성 기관지염 이라며 절대안정 이라고 하며 본인뿐 아니라 방에서는 절대금연 이라고 했다.
1달동안 입원 했지만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옆에 다른 병원으로 옴기게 되었고 그곳에서는 심장병 이라며 따뜻한 온돌방에 입원을 권유했고 여기서도 40여일 입원 했지만 차도가 없어 동네의 아는 의사의 소개로 대전에 신경외과로 옴기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검사후 신경성 이라고 했다. 좀처럼 신경성은 받아 들이기 힘들지만 입원을 하라고 해서 입원하고 보니 여러 사람들이 신경성 이라는 병명으로 입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병도 있나보다 하고 열심히 치료를 했지만 여기서도 차도가 없었다.
이렇게 입원을 하면서 목과.어깨가 콩볶는거 처럼 끌고 팔이 저리고 아무리 물을 먹어도
입이 마르는 병만 추가 되었다. 여기서 입원 하는 동안엔 낯에는 한의원에 가서 놀랬다고 침맞고 약져오고 저녁에는 집에서 굿하고 아침에 돌아오는 일이 많았습니다.
발생 초기를 보면 한의원에서 놀랬다는 말과 무속인들의 조상에 대한 한을 풀어야 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여 10여차례 굿을 했지만 약간의 기대와 위안은 되는거 같은데 전혀 치료엔 되움이 안됐습니다. 여기 신경외과에서 2개월 넘게 입원하고 이제는 한방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한방 병원에서는 놀라고 기가 약하다고 했다.환약과 침을 지겹게 맞았지만 아무런 효과도 못보고 속병만 추가 되었다. 퇴원하고 싶었지만 갈만한 병원을 찿지 못하고 퇴원을 했다.
너무 힘들어 신경외과에 재입원을 했다. 이제는 온몸에 힘이 없고 무기력 해진다. 이렇게 치료를 해도 새로운 증상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너무 지쳐 있었다. 병원 에서도 고치기 힘든 희귀병 같았다. 아버지도 몇차례 대수술로 2년간 입원한 직후 이기에 줄어드는 농토에 가슴터진다.
무엇인가 결단이 필요했다. 어머니 한테 너무 힘들지만 집에 가자고 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병원은 찿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 모든걸 포기하고 죽음 까지도 많이 살았다고 이렇게 사느니 죽어서 원수를 갑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두려운게 없었다.
집에와서 누워서만 고통을 견디며 생활하고 있을때 많은 사람들이 왔었지만 친구등 사람을 만나는걸 꺼려했다. 실제로 시골 친구가 40여명 되지만 가장 가까운 3명만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였다.
나머지는 오지 말라고 했다. 극과.극에 비유 했던거같다.
집에서 비참한 고통속에 잠을 못이루다 어떻게 잠이들면 내일이 올까 걱정이었다.
변함없이 내일은 오는데 눈만뜨면 똑같은 고통과 싸워야 했다.
어느정도의 몸을 추슬러 이제는 들로 산으로 눈물과 고함과 노래를 부르며 정처없이
돌아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경운기를 가지고 왔고 어머니가 산사에 가서 수양이나 해보라고
절에다 데려다 두고 갔다. 절에는 고시 공부하는 몇명의 학생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러나 저녁 시사후 지금 방이없다. 내일 방이 나니까 오늘은 법당에서 자라며 이불과
함께 안내해 주었다.
그날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밤새 뜬눈으로 지새워 동이트자 보살님을 찿아가 지금
집에 간다고 하고 내려 오는데 심한 구토가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님 께서 워짠 일이냐 1달에 쌀한가마 주기로 했는데 오늘 방이
난다면 조금 이라도 있어 보라고 권유 했지만 막무가네 였다.
그동안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엇은게 있다면 희귀병이다 그러나 죽지는 않느다.
대단한거 발견 했지요. 그후로 가족과 친구들 일터에 일은 못하지만 참견을 하면서
이겨보려 무진애를 써보지만 매번 논두렁 밭두렁에 눕고 또랑에 머리를 담그고 해보지만
매번 패배자가 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고 일어 났는데 복부 팽만감과 가슴이 답답한 느낌과 두통은
심했는데 부은거 같은 느낌과 심장이 조용해 졌다..
다낳은 기분 이었지요. 정말다시 오면 안되는데 하면서 불안 했지만 주증상이 없어지며
이제는 일도할수 있었고 운전면허 시험봐서 그거하나 가지고 연고도 없는 이곳 수원에
대가족을 이끌고 정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은 증상이 한두개가 아니잖아요. 너무 힘들게 하는거여요.
이곳에 올라와서 서울에서 일을하게 되었는데 전철타고 용산까지 가서 버스로 영동으로
가야 하는데 똑바로 서있지도 못하겠고 미치겠는거여요 답답해서 온몸에 힘도 빠지고
안양에서 내리고 조금뒤 다시타면 한정거장도 못가겠고 시골에 갈일이 있어서 고속버스
타면 똑같고 가슴에서 부터 머리쪽으로 후끈 치밀면서 내려 달라고 할까 소리를 지를까
별생각을 다하다가 방법이 없으니까 체념하고 누워 있거나 버스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조금 지나면 안정이 되고 했는데 촌놈이 전철.버스를 처음 타보니 멀미가 심한줄
알고 엄청난 고생 해가며 한번도 회피 하지는 않았어요.그래서 인지 대중 교통은 바로
안정이 됐는데 이제는 집착과 이유없이 울화가 치밀어 1년에 1~2번은 견딜수 없어서
약국과 병원을 도움은 안되지만 찿게 됩니다.
병원을 가면 제일 먼저가 치료 보다는 병명이 무엇인지 제일 궁금 했습니다.
이곳 수원에 와서도 엄청많은 크고작은 병원과 한의원을 찿아 다녔지요.
가는 곳마다 말하기도 힘들지만 조금 이라도 진단에 도움이 될까 위 내용들을 하나라도
더이야기 할려고 하고 의사는 무성의 하게 대했던 지난날이 생각 납니다.
93년 부터는 버스를 운전 했는데 운행중 화가나서 싸움을 하려고 내려 갔는데 호흡이
마음대로 안되고 말을 할수가 없어서 용감 했었는데 비참하게 인도에 앉아 있다가
안정을 시키고 돌아 온후로 몇 년간을 아예 바보처럼 싸움을 피해 왔는데 어느날 화가
너무나서 심하게 싸움을 하고 왔는데 그때서야 싸움을 했구나 괜찮았구나 엄청 신기한
사건 이었어요. 그후로 한번도 참지 않았답니다.
초기에 증상과 중간에 증상도 없어 졌지만 좋아서 하는일엔 볼트 하나와 몇시간 씨름을 해도 괜찮은 반면 컴퓨터와 읽고쓰기 면도등은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어 5분이상 못했어요.
특히 가슴에 통증이 심해서 동내 병원에 한달동안 치료를 했는데 협심증 같다고 하면서
약으로서 치료를 할려면 오래 걸린다며 꾸준한 치료를 권유 했지요.
버스를 하면서 알게된 경기신경 정신과는 인지학습 연구소란 간판이 하나더 있더군요.
무엇인가 특이하고 한번도 권유 및 가보지 않은 마지막 병원이란 생각에 쉬는날 병원을 찿았는데 근처에서 많이 말설이다 보는사람 없을때 들어 갔지요.
바로 검사와 함께 병명이 공황장애 라면서 완치도 가능 하다고 하시면서 인지행동 치료를권유 했지요. 아참 먼저 가슴의 통증부터 치료해야 한다고 소견서 써주셔서 심장 정밀검사받았는데 이상 없다고 나왔어요. 이상 없다고 하니까 안심이 되었는지 별로 신경 안쓰고 잊어 버렸어요.
제가 불안해 했던것은 새로운 증상은 생기는데 병명조차 알지 못한것이 제일큰 두려움이
있었답니다. 요즘은 많이 알려져 대부분 일찍 병원을 찿게 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치료에 효과적일 거라 생각 합니다.
병명과 인지행동 치료까지 23년의 고통을 감수하며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을 돌아
보면 너무 분통 터집니다.
바로 5기로 치료를 시작했고 그동안 나름대로 대처해온 방법도 일맥상통 하다고 보여
집니다. 그래서 인지 쉽게 공황탈출 할수 있었다고 보여 집니다. 미스테리가 있다면 (약을 먹으면 10분 이내에 평온해 진다)
(공황이 오면 몇십분 후에 사라진다 )
이것은 내가 맞보지 못했던 부분이라서 궁금할 뿐이랍니다.
엄청난 쓸데없는 약들을 그렇게 많이 먹었으니 몸이 어디가 멀쩡 하겠습니까.
그동안 공황과 함께 수술을 : 맹장. 다리 탈장.허리등.을 수술해서 마취 때문인지 모르나 기억역이 없습니다. 또한군데 수술이 남았는데 해야 하는지 정말 지겨워 죽겠어요.
현재 저한테는 공황을 부르는 문제가 많지만 공황 이라는 단어가 새롭습니다.
공황탈출 후기는 여러번 언급되어 다음에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동안 원장님과 간호사님 동료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환우 여러분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환자는1%센트의 성공률에도 기적과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비유해 봅시다. 힘내시고 공황탈출 한는 한해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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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밤까시님께 단편적으로 들어오던 이야기가 집대성 되어 있는 글입니다. 사연이 많은 분들이 많고 귀하는 그중에서도 특히 고생을 많이 하신 분입니다. 그런 만큼 지금도 공황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도움을 받는 사람도 많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