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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취약성)의 기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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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1-04-07 11:48 조회1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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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취약성)의 기원 찾아보기>

나는 취약성의 근원을 알아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나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치신 분들은 아무래도 나의 부모님이리라. 이것이 맞다 안 맞다 확신 할 순 없지만 어렸을 때 많은 영향을 끼치신 분들임엔 틀림없는 일이고 나 역시 그분들의 일부로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그 분들의 신념이 곧 지금 나의 모습일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어 과거로 돌아가 본다....

현재 나의 상황 혹은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이 있다면 되짚어 보는 방법으로 하기로 했다.

1. 나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모든 일을 될 수 있으면 완벽하게 처리 하려는 경향이 많다. 

물론 그에 따른 생각이 많다 보니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리곤 한다. 미리 계획을 짜고 완벽하게 그 시간에 맞추려 하다 보니 항상 시간은 빠듯하고 뭔가 빠진 듯 부족함으로 나 스스로를 달달 볶는다. 조급해지면 마음이 급해지고 생각이 복잡해진다. 편안함이 순식간에 번잡함으로 바뀐다. 

======>> 이것은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엄마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문득 내 행동에서 엄마의 모습이 느껴질 때가 있다. 가끔씩 나는 아이들이나 아이 아빠에게 원하는 것이 빨리 빨리 충족 되지 않으면 조바심이 나서 금방 그 일을 끝내주기를 바라며, 크게 화를 내기도 한다. 신혼 초에는 그런 일로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 편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가끔씩 습관적으로 불쑥불쑥 조급함이 튀어 나온다.


나의 엄마는 항상 입에 빨리 빨리를 달고 사셨다... 뭐든 빨리하고 끝내자.. 항상 무슨 일을 하든 일등을 하셔야 직성이 풀리셨고, 바깥일에 아무리 지쳐도 집에 오면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치우셔야 마음이 안정되는 분이시다. 아무리 아파도 머리는 감아야 직성이 풀리시고, 우리는 엄마가 머리를 감으시면 농담처럼 “엄마 다 나았다”할 정도로 항상 정갈하신 분이시다. 주무시기 전 까지는 바쁘시고, 미리미리 일을 처리해 놓으시는 편이셨다. 해야 할일을 뒤로 미루는 법이 없고, 먼저 해놓아야만 편안해 하셨다. 두루 두루 집안일에 음식 솜씨며 옷 만드는 솜씨 좋게 말하면 센스가 아주 뛰어 나신 분이시다. 하지만 성격은 아주 예민하셨다. 그래서인지 조그만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바심을 내곤 하셨다.  아마 그 조급함으로 천식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2. 우리 집 식구들은 병원가기를 두려워한다. 나 역시 병원을 갈려면 괜히 불안해 질 때가 있다. 

엄마는 천식을 앓고 계신데 조금만 신경을 곤두세워도 숨이 차고 힘들어 하시는 것을 많이 봐왔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은 엄마의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자라서인지 지금도 엄마가 아프다고 하시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신경이 예민해진다. 엄마의 아픈 모습으로 심적인 스트레스를 오빠들이나 언니 그리고 나는 많이 받고 자랐다. 그래서 일까?? 우리 식구 중 특히 셋째오빠는 지금도 병원에만 가면 혈압이 올라가고 심장 박동소리가 요동을 친다. 우리는 병원에 가면 없던 병이 생긴다고 가지 말고 편하게 그냥 살라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아마 이것도 엄마의 아픈 모습을 오랫동안 봐온 탓이어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3. 엄마가 아프다고 하시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불안해지고 우울해진다. 스트레스가 막 쌓이고 짜증이 난다. 

나는 엄마의 아픈 모습을 볼 때마다 감당할 수 없는 느낌과 무기력에 많이 힘들어 했었다.. 위 형제들과의 나이 차이가 많아서 오빠들과 언니가 모두 학교로 사회로 떠나버리고 나 혼자 집에 있었을 때 그 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천식으로 힘들어할 때 그 숨소리가 너무도 듣기 싫어 밖으로 뛰쳐 나가버리고 싶은 충동도 들었고,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도 힘든 순간이었고, 그런 엄마에게 짜증 부리는 나 스스로에게 죄책감도 느꼈던 것 같다.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저 소리를 안 듣고 살았으면 싶었다.. 오빠나 언니가 옆에 있었다면 아마 덜 힘들 텐데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아마 어떤 힘도 없는 내가 엄마를 감당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무의식속에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엄마의 숨소리에 식구들은 점점 무디어갔고 아버지 역시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하셨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 모습에 서운해 하셨고 가끔씩 싸우시기라도 하시면 서운한 속마음을 내비치시곤 했었다. 나 또한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싫을 때가 있었다.. 아픈 사람한테 왜 저리 냉소적일까? 하고.. 나도 따뜻하게 편하게 보지 못하면서 말이다.

갑자기 그때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진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아직도 나의 기억 저편에 자리하고 있었나보다...

지금 아버지는 다행히 나이가 드시면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엄마의 든든한 후원자로 버티고 계시다..  올해 아버지 나이 82세, 어머니 나이 70세이시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문득 글을 쓰면서 놀란다.
항상 엄마를 측은하고 불쌍하신 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줄 알았는데 ...
내 마음속에 엄마로 인해 받은 상처가 이렇게 클 줄이야..
엄마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 마음의 상처를 나 자신에게 겨누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내 마음속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감이 다른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나를 객관적으로 본다.

나는 그때 학생이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가끔씩 엄마가 힘들어하실 때 부엌일을 도와주는 것이 전부였다..  한번은 큰오빠가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모시고가 한 달 정도 입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학교를 다니면서 집안일을 도맡아 했었는데 몸은 힘들었지만, 엄마의 아픈 모습을 보지 않으니 한편으론 좋았었던 기억이 난다.. 그 나이에 나는 아직 어리고 어떤 책임을 질수 있는 힘도 없었다.
그리고 엄마가 아픈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는 아마 엄마를 도와줄 수 없었던 무기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를 비난하고 질책하진 않았는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다르다.. 엄마가 아프시면 걱정되긴 하지만 죄책감을 가지진 않는다. 그것은 내가 대신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4. 늦둥이로 태어나 어릴때 형제들과의 정서적 교류가 적었다..

나는 늦둥이로 엄마나이 35세 아버지나이 47세에 나를 낳으셨다.. 엄마는 안낳을려다 낳았더니 아주 낳길 잘했다고 어릴때부터 그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엄마나이 32세때부터 병명(천식)도 확실히 모르면서 시름 시름 앓고 계셨는데 동네 어르신분들이 아이를 낳아 몸조리를 잘하면 병이 낫을수도 있다는 참으로 어이없는 이야기를 듣고, 결단을 내려 나를 낳으셨던 것이다. 나는 가끔씩 엄마께 나는 태어날때부터 효녀였다고 어름장을 놓곤 했었다.
바로 위에 언니와는 6년 차이이다. 제일 큰오빠와는 15년 터울이다.. 그래서 내가 중학교 1학년 되는 해에 마지막까지 함께 의지하며 지내오던 언니가 대학을 입학하면서 형제들과 함께 지낼 시간은 거의 없었다. 명절 때 가끔 오빠들이 오면 쑥스럽고 손님 같았다. 물론 초등학교 입학 전후로 오빠들과 함께 지낼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집안에 재롱둥이 였다.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건 저녁을 먹고 밤만 되면 온 식구들이 아랫목에서 나의 노래와 춤을 보기위해서 모였었다. 오빠는 디스코를 전수 해주었고, 엄마랑 오빠들은 돈을 준다며 자주 나에게 춤이랑 노래를 시키곤 했다. 그때는 참 포근하고 평화로웠었다. 지금 생각해도 소중한 추억이다.

취업을 해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결혼한 큰오빠 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처음엔 어색했지만 친화력 좋은 나는 금방 오빠를 웃게 만들곤 했었다. 큰오빠는 내가 조금 늦기라도 하면 잠을 못자고 올 때까지 항상 기다리곤 했고,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 때면 나는 괜히 조바심이 나서 친구들에게 전화를 부탁해서 안심을 시켜주곤 했었다. 어떨 땐 혼자 독립을 해서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혼자서 집을 얻어 살 용기는 없었다. 그리고 오빠들이나 부모님들 역시 여자 혼자서 자취를 하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셨다.  사실 올케언니에게 좀 미안했다. 언니 역시 결혼하기 전까지는 오빠네서 살았고 그리고 나까지 있으려니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고, 눈치 아닌 눈치도 보였었다.


5. 나는 초등학교 때 까지 밤에 오줌을 싸곤 했다.

나는 꽤 늦은 나이까지 밤에 오줌을 쌌다.. 그래서 엄마에게 야단을 맞곤 했었다.. 소금을 받으러도 꽤나 다녔었다.^^  어느 날 엄마가 동네 친척 아주머니께 내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었다. “애가 몸이 약한지 자꾸 밤에 오줌을 싸는 데 병원에 데려가 봐야 할까요?”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몸이 약해서 오줌을 싸는구나 생각 했다.. 어릴 때 특별히 병치레는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다지 살집이 좋거나 체력적으로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을 텐데... 그 순간은 내가 정말 몸이 약한가 부다..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로부터 항상 몸이 허약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마른편이라 주위에서도 약하다 했고, 그래서인지 특별한 병을 앓진 않았지만 항상 몸이 약하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하지만 허약한 체질로 태어났지만 운동이나 음식으로 이 부분은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확인하면 되고, 누구나 취약한 부분은 있기 마련이니까, 나는 단지 몸에 살이 없어 조금 부실해 보이지만 나 스스로는 마른것이 꼭 허약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살이 쪄서 올수 있는 병이 더 많은것 같다.. 하지만 근력운동을 해서 조금 더 건강한 몸을 만들고 싶다.
 

공황(취약성)의 근원을 찾으며 느낀점

작업을 하면서 그냥 단순히 엄마는 평생을 아파서 불쌍한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아버지도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버지를 잠시나마 공격했던 나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항상 아버지 생각을 하면 엄마에게 냉담하신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 할 수 있게 되어 편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무게를 덜기 위해 아버지를 공격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다른 형제들 모두가 엄마에겐 한없이 잘하려고 하지만 정작 아버지에게는 알 수 없는 거리감을 가지는 것이 이런 이유가 아닐까?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엄마에 대해서 무기력감이나 중압감을 느꼈었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오빠나 언니가 함께 있고 나에게 어떤 역할이 없었을 때는 한없이 편하게 지내다가 모두들 타지로 떠나고 중학교 1학년 사춘기 시절부터 악몽처럼 중압감에 눌려 때론 한없이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슬프기도 했던 시간이 있었음을 알았다. 물론 매일을 그렇게 지내진 않았지만 엄마가 아프면 나는 당당하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더 신경이 쓰였고, 심장이 터질듯 화가 나기도 했었다. 왜 엄마는 저렇게 아프고 나는 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는 걸까? 사실 엄마가 아프면 많이 불안하고 무서웠다.. 심장에 갑자기 뭔가가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고 겁이 났다. 저러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떡할까? 하고 너무 두려웠다.. 

어떨땐 오빠들이나 언니는 편하게 지내는데 왜 나만 여기서 이 고통을 보면서 지내야 하는지 마음속으로 원망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지난 일이고, 나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가 아프신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나는 좀 더 안정적으로 엄마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엄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이였고, 내가 상처 받은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건 지금이다. 나 혼자가 아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다. 나는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고,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단지 그것 뿐이다.


원장선생님의 조언처럼 나는 이제 어른이 된것이다.. 어른이란 어린이였을때보다 훨씬더 판단능력이 뛰어나고, 성숙하다는 뜻이다.. 외적으로는 성장했으되 마음으로는 어린 그때에 멈춰져 있었던건 아니었을까?..... 물론 쉽진 않겠지.. 그동안의 습관을 고쳐간다는건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니까... 내가 한번도 가보지 않는 길을 가야하는 것일수도있고 뭔가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므로.... 이제 나는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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